2021년 개봉한 애플 오리지널 영화 ‘체리(Cherry)’는 단순한 범죄 드라마나 러브 스토리를 넘어, 현대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고 인간 본성의 취약성과 회복력을 강하게 조명하는 작품입니다. 루쏘 형제가 연출하고,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유명한 톰 홀랜드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니코 워커의 동명 자전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PTSD, 마약 중독, 청춘의 상실, 전쟁의 트라우마, 범죄와 구속, 그리고 회복과 재회를 포함한 인간사의 깊은 굴곡을 142분 동안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체리는 하나의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전쟁에 다녀온 수많은 청년들과 그들이 겪는 현실의 은유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핵심 내용을 여섯 개의 주요 섹션으로 나누어 분석하며, <체리>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1. 사랑으로 시작된 체리의 인생 – 평범함과 순수함의 시절
체리는 원래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불안과 공황장애를 안고 살아가던 청춘 체리는 학교에서 에밀리를 만나 삶에 새로운 빛을 보게 됩니다. 그녀와의 사랑은 체리에게 치유처럼 다가왔고, 두 사람은 짧지만 강렬한 시간 동안 깊은 감정을 나눕니다. 하지만 에밀리의 유학 계획은 체리를 다시 불안과 충동으로 밀어넣고, 체리는 홧김에 군 입대를 결정합니다. 이후 에밀리는 진심을 고백하고 둘은 결혼하게 되지만, 체리의 입대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됩니다. 이 시점은 영화에서 가장 순수하고 따뜻한 부분이며, 이후 벌어질 파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체리와 에밀리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들은 사회적 현실과 개인적 고통 속에서 점점 서로를 지탱하기 어려워집니다.
2. 전쟁의 참혹함 – PTSD의 시작과 인간성의 붕괴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체리는 의무병으로서 상상도 못할 광경을 직면합니다. 가까운 동료 히메네스가 IED 폭발로 사망하고, 매일같이 전장에서 죽음과 마주하는 경험은 그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전쟁은 단순히 전투를 치르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감정을 하나하나 박탈해가는 과정입니다. 체리는 더 이상 이전의 체리가 아니었고, 영화는 전쟁 장면을 통해 그가 어떤 심리적 붕괴를 겪는지를 밀도 있게 묘사합니다. 전쟁 후유증은 단순한 불면이나 악몽을 넘어, 무력감과 분노, 자해적 충동 등으로 연결되며, 이는 귀환 후 그의 삶에 그대로 드리워지게 됩니다. 이 시퀀스는 관객에게 전쟁의 공포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참전 군인들이 겪는 내면의 파열음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3. 귀국 후 현실 – 마약 중독과 점점 무너져가는 삶
복무를 마친 체리는 무공훈장을 받고 귀국합니다. 에밀리와 다시 함께 하며 부모의 도움으로 집도 마련하고 새 삶을 시작하지만, 전쟁의 상처는 그를 좀처럼 놓아주지 않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던 체리는 의사의 권유로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복용하기 시작하고, 점점 약물 의존도가 높아집니다. 에밀리 역시 체리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마약에 빠지게 됩니다. 이 부부는 헤로인까지 복용하며 급속도로 중독자의 삶으로 전락하고, 이들의 사랑은 더 이상 감정의 교류가 아닌, 고통의 공유로 변질됩니다. 체리와 에밀리의 모습은 중독이 어떻게 일상을 장악하고, 한 인간을 고립된 세계로 몰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마약의 무서움만을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PTSD 치료의 부재와 미국 의료 시스템의 공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4. 범죄와 붕괴 – 체계 없는 사회와 망가지는 개인
중독은 결국 재정 파탄으로 이어지고, 체리는 마약 값을 벌기 위해 범죄에 손을 댑니다. 처음에는 마약상을 털고, 이후 은행 강도를 반복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체리는 극도의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며, 친구의 죽음과 마약상과의 갈등 속에서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됩니다. 영화는 체리의 범죄를 정당화하지 않지만,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줍니다. 그는 악인이 아니며, 단지 상처받은 청춘이고, 이 사회에 의해 방치된 병든 인간입니다. 범죄 행위는 중독에서 오는 절박함과,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속에서 벌어진 선택이었고, 이는 결국 체리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서 자수라는 마지막 방법을 택하게 만듭니다. 체리는 마지막 은행 강도 후 경찰을 기다리며, 스스로 범죄의 고리를 끊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 장면은 절망 속에서도 인간이 자발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5. 감옥 속 회복 – 시간은 고통을 지나 희망을 만든다
체리는 교도소에서 14년을 보내며 중독을 이겨냅니다. 영화는 이 시간을 길게 다루지는 않지만, 체리의 변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교도소 문을 나설 때, 예전처럼 망가진 눈빛이 아닌, 안정되고 깨끗한 눈빛을 갖고 있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에밀리의 미소는 관객에게 말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이 장면은 체리의 이야기 속에서 유일한 ‘완전한 희망’의 순간이며,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구원의 메시지를 가장 강렬하게 전달하는 부분입니다. 중독과 범죄, 실패로 얼룩졌던 인생도, 자신의 의지와 치유 과정을 통해 다시 삶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체리는 보여줍니다. 에밀리와의 재회는 사랑이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회복과 지지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6. 영화 ‘체리’의 진짜 의미 – 사회 구조에 던지는 질문
이 영화는 단순한 청춘의 일탈 이야기가 아닙니다. <체리>는 미국의 군사 정책, 의료 체계,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참전 군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 부재 등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체리는 선택의 연속에서 자신을 망가뜨렸지만, 그 선택은 결코 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으로부터 안전하게 복귀할 시스템이 없었고, 의료 시스템은 마약성 진통제를 무책임하게 처방하며 중독을 키웠으며, 사회는 그를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회만을 탓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체리가 스스로 감옥을 선택하고, 스스로 중독을 극복하고, 스스로 다시 사랑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인간이 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결국 <체리>는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개인의 책임과 선택 또한 그만큼 중요하다는 균형 있는 시선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뛰어난 연기력으로 풀어낸 톰 홀랜드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감정적 정점이자 가장 큰 성공 요소입니다.